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읍면소개 > 지명유래

의령읍 백야(白也)마을

작성자
의령읍
작성일
2529
등록일
2003.08.06
읍면
의령읍
첨부

법정동리상 정암리(鼎巖里)에 속하는데 어른들은 「정암배기」라고 부른다. 백이니 백야(白也)로 한 지명은 더러 있는데 그 유래에 대해서는 구구하다. 이곳도 옛날 박을 많이 심었던 곳이라 박골이라거나 박이골로 부르다가 백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. 또 처음 백(白)씨와 이(□)씨가 터를 잡았다해서 백이골이니 백이촌으로 불렀는데 많은 사람이 살게 되면서 특정 성씨를 지칭하는 지명이라서 조금 바꾸어 백야로 지었다는 설명이다. 한자지명의 풀이로는 백(白)은 흰모래 즉 강변의 모래벌을 뜻하고 야(也)는 여자의 음부를 나타내는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남강의 모래와 오복하게 생긴지형에 맞추어서 백사야곡(白沙也谷)에서 비롯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. 또 다른 이야기로는 임란때 의병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인데 위계전법과 유격전에 쓰기 위해서 큰 바가지로 탈을 만들어서 허수아비에 씌우고는 밤이 되면 강변요지에다 세웠다고 한다. 달밤에 보면 꼭 팔대장신의 군사로 보이게 하였다는 것이다. 이 탈과 허수아비를 만들기 위해 골안 산자락밭에 박을 많이 심었고 또한 박속을 식량대용으로 먹기도 했다는 것이다. 그래서 박이골, 박골로 부르다가 뒷날 한자지명으로 바꾸게 되자 백야로 정했다는 것이다. 우리고장에도 백야란 지명이 두어 곳 있지만 그 유래가 서로 다르다. 이 마을의 입지적 조건으로 보면 정암과 아주 가깝고 옛날에는 자주 물이 드는 지역이었다. 마을 앞에는 배가 늘 매어 있었고 거룻배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로 미루어서 뱃꾼(선원, 뱃사공을 말함)에서 비롯된 말이 아닐까 싶었다. 어쨌든 배기 다리도 놓이고 제방이 잘 쌓이면서 물굼티(물이 들어서 농사를 제대로 지을수 없는 논을 말함)도 옥답이 되었고 교통도 아주 편해 졌다. 골이지만 동남향으로 트여서 아늑해 보이는 마을이다. 동네앞 길가에는 현감김후재완진강선정비(縣監金候載琬振綱善政碑)가 서 있고 또 임란창의 18장의 한분으로 정진전투에서 순절하신 죽헌(竹軒) 이운장(□雲長))장군의 전적기념비가 서 있다. 옛날 백이다리(지금 백야교를 말함)옆 덤위에 사인합천이우식수재구휼비(士人陜川□祐植水災救恤碑)가 서 있었는데 새다리와 농공단지 진입로를 내면서 그 옆 길가에 옮겨 놓았는데 너무 초라해보여서 후학으로서 자괴감이 들었다. 을축년(1925년) 6월 큰홍수가 지고 정암백야는 온통 물에 잠겼으며 가산과 농토가 유실되자 당시 만석꾼부자였던 이우식(□祐植)선생은 수백석의 곡식을 헐어서 수재민을 구휼했다는 것이다. 그래서 동민들이 뜻을 모아 송덕비를 세웠던 것이며 이 밖에도 군내 여러 곳에 이같은 송덕비가 있다. 이 마을 밖 산언덕에 장군바구(장군바위)가 있는데 상당히 높은 절벽으로 중간쯤에 돌문(석문, 石門)이 있었다고 한다. 이 마을에는 경주김(金)씨가 처음 들어왔다는데 지금도 김(金)씨가 가장 많고, 노ㆍ이ㆍ최씨 등이 90여가구를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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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담당 의령읍 총무팀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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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최종수정일 2023-01-18